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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마을: 강원도 운탄고도 폐광촌 탐방기

by 김제빵 2025. 4. 14.

 강원도 깊은 산속, 한때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길 ‘운탄고도’를 따라 걷다 보면, 지도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폐광촌들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은 사람이 떠나고 시간만 머물러 있는 그 마을들. 낡은 벽화와 쓰러진 집,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 속에서, 우리는 잊힌 삶의 온기와 이야기를 다시 만난다. 

 

 이번 글에서는 강원도 운탄고도 폐광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시간이 멈춘 마을: 강원도 운탄고도 폐광촌 탐방기
시간이 멈춘 마을: 강원도 운탄고도 폐광촌 탐방기

 

길이 멈춘 그곳, 운탄고도에서 만난 첫 마을

🚶 트럭 대신 사람만 지나는 길

 강원도 정선과 태백 사이, 해발 1,0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지대에는 ‘운탄고도’라는 독특한 이름의 길이 있다. 이름 그대로,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라는 뜻이다. 과거 광산에서 캐낸 석탄을 실어 나르던 트럭들이 오가던 이 길은, 지금은 사람의 두 발로만 닿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변모했다. GPS가 불안정하고, 휴대폰 신호가 끊기기 일쑤인 그 길 위에서 나는 마치 다른 시간대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을 느낀다.

 

🏚 폐허 속에서 마주한 마을

  몇 시간을 걷자, 마침내 작은 마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도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 마을은, 슬레이트 지붕과 낡은 시멘트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표어가 적힌 공동주택 벽면은 바랜 채 그대로 남아 있었고, ‘석탄은 흑진주’라는 문구가 애처롭도록 선명했다.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 안에는 메뉴판이 그대로 걸려 있었고, 그곳에 적힌 김치찌개 1,000원이라는 숫자는 이곳이 얼마나 오래 전에 멈춰버린 공간인지 알려주었다.

 

🌬 고요한 풍경 속에서 느낀 감정

 마을은 말 그대로 고요했다. 사람의 소리도, 기계의 소리도 없었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낡은 천막과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만이 들린다. 폐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벽에 걸린 채색이 바랜 벽화, 그리고 텅 빈 마당. 이 마을은 단순히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머금은 채 조용히 살아남은 장소였다. 나는 그 안에서 누군가의 삶의 조각을 느꼈고, 잠시 말을 잊은 채 그곳에 멈춰 서 있었다.

 

까만 황금이 만든 마을, 그리고 그 끝

⛏ 석탄 산업의 영광

 운탄고도를 따라 이어지는 폐광촌들은 대부분 1970~80년대 석탄산업의 호황기 때 지어졌다. 강원도는 그 당시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지였고, ‘광부’라는 이름은 누구보다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광부들은 지하 수백 미터로 내려가 석탄을 캐냈고, 그 석탄은 수많은 집과 공장의 에너지원이 되었다. ‘흑진주’라는 별명은 그 상징성과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 활기찼던 삶의 흔적

 마을도 한때 수백 명이 거주하던 자급자족형 생활권이었다. 광산 노동자와 그 가족들, 병원, 목욕탕, 구멍가게, 학교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골목마다 울려 퍼졌고, 저녁이면 가족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인해 석탄 산업은 쇠락했고, 탄광은 폐쇄되었으며, 사람들은 도시로 흩어졌다.

 

🎨 낡은 벽화 속 미소

 마을 한편에는 한 아이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벽화가 있었다. 동네 학교 학생이 모델이었을지 모를 그 벽화는 시간이 멈춘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옆으로는 금이 간 벽과 깨진 유리창이 덧입혀져 있었다. 활기와 희망이 가득했을 그 시절의 흔적은, 지금은 고요하고 쓸쓸한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한참을 그 벽화를 바라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과연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폐허 속의 기억,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기억은 공간에 남는다

 마을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전봇대에 걸린 전선, 녹슨 우편함, 쓰러진 장독대. 모두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제 기능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에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바로 ‘기억’이었다. 나는 이 마을이 단순한 폐허가 아닌, 누군가의 삶이 녹아 있는 ‘기억의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잊히는 것의 두려움

 시간이 흐르면 공간도, 사람도 잊힌다. 하지만 이 마을처럼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공간은 ‘기억되지 않으면 진짜로 사라진다.’ 그저 “버려졌다”라고 표현하기에는 아깝고,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낡은 것이 쓸모없다는 인식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간에 귀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 다시 살아나는 기억

 다행히 최근엔 폐광촌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거나,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되살리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공간을 ‘기억하려는 의지’다. 그곳을 걷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쓰고, 전하는 일. 그렇게 작은 관심이 쌓이면, 언젠가는 이 마을도 다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을 걷는다는 건 단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