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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의 쇠퇴: 사라진 유황 냄새와 휴양지의 기억

by 김제빵 2025. 4. 18.

 한때 겨울철 최고의 여행지이자 가족 단위 휴양의 상징이었던 ‘온천’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던 낡은 온천탕, 호텔 앞 전단지를 들고 발길을 재촉하던 여행객, 노곤한 몸을 담그며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이번 글에서는 전성기를 누렸던 우리나라의 온천 문화가 어떻게 쇠퇴해 왔는지, 그리고 그 흔적들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더 나아가 이 온천 명소들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온천의 쇠퇴: 사라진 유황 냄새와 휴양지의 기억

온천 여행의 전성기, 그리고 그 인기의 배경

① 8090년대, 가족 중심의 단체 온천 여행

 1980-90년대 우리나라에서 ‘온천’은 단순한 목욕을 넘어, 한 해에 한두 번 가족이 함께 떠나는 대표적인 휴양지였습니다.   경주, 덕산, 수안보, 아산, 해운대, 울진 등 주요 온천지에는 겨울철이면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섰고, 온천수의 효능을 알리는 간판이 거리마다 걸려 있었습니다. ‘관절염’, ‘피부병’, ‘피로회복’이라는 문구는 어르신들을 끌어들였고, 사우나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대형 온천탕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지역 경제와 연결된 온천 단지 온천이 유명

 그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숙박시설, 음식점, 특산물 판매장이 형성되었습니다. 경주의 불국사 관광과 보문단지 여행은 경주 온천을 필수 코스로 포함했고, 충남 덕산은 온천 관광단지를 중심으로 지역 경제가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온천 인근에는 수십 개의 모텔과 관광호텔, 유원지가 조성되어 지역민들의 생계 기반이 되었죠.

 

'물 좋다'는 소문이 만든 인기 온천수의 효능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수질 좋은 온천’이란 개념도 널리 퍼졌습니다. 유황온천, 탄산온천, 알칼리성 온천 등 특색 있는 수질은 해당 지역 온천의 브랜드가 되었고, 어떤 곳은 피부에 거품이 이는 물, 어떤 곳은 물에서 유황 냄새가 진동해 더욱 ‘효능이 있는’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소문 중심의 온천 문화는, 시간이 지나며 과학적 검증보다는 마케팅 요소로 소비되기 시작합니다.

 

 

시대가 바뀌며 잊혀져 간 온천 마을들

① 사우나와 찜질방의 등장으로 사라진 차별성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도시에 대형 찜질방과 사우나 문화가 정착되자, 굳이 멀리까지 온천 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가 줄어들었습니다. 시설이 훨씬 현대적인 데다 접근성도 좋은 도심형 목욕 문화가 생기면서, 전통적인 온천지의 입지는 빠르게 약화되었습니다. 특히 오래된 온천시설들은 리모델링 비용 문제로 시설 개선이 어렵고, 이로 인해 더 빠르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② 수안보와 덕산

 ‘대표 온천지’의 현재 충북 충주에 위치한 수안보온천은 70~80년대의 ‘국민 휴양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을 닫은 호텔과 방치된 건물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은 점차 침체되었습니다. 충남 예산의 덕산온천 역시 유사한 길을 걸었습니다. 새롭게 조성된 리조트 몇 곳을 제외하면, 도심형 관광시설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상태입니다. 간판만 바뀌고, 온천 자체는 유지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③ 자연환경 훼손과 온천수 고갈 과도한 개발과 지하수 남용 

 일부 온천지에서 실제 온천수 고갈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수온이 낮아지거나, 지하수가 마르면서 온천수를 ‘끓여서’ 공급하는 사례도 생겨났고, 이는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제 유효한 온천수가 아닌 인공적인 물 공급이 반복되면서, 전통 온천의 정체성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다시 주목받을 수 있을까? 온천의 가능성과 과제

① 웰니스 관광 시대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온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에서 ‘웰니스(Wellness) 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여행 트렌드는 온천이 갖는 본래의 기능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흐름에 맞춰 일부 지역에서는 ‘힐링’을 전면에 내세운 온천 재생 프로젝트가 시도되고 있으며, 일본식 노천탕 형태나 한옥과 결합한 테마형 숙박시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② 지역 문화와 연결한 ‘복합 온천 공간’ 실험

 단순한 목욕시설을 넘어, 온천을 지역 문화와 연계하려는 시도도 눈에 띕니다. 전통찻집, 로컬푸드 체험, 지역 농산물 판매장 등과 온천을 결합해 ‘하루 머무는 관광지’로 재구성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경북 울진, 전남 보성 등은 온천 외에도 숲길, 바다 전망 등을 엮은 종합 힐링 공간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③ 옛 온천마을의 기록과 보존도 필요

 온천 관광이 쇠퇴했다 해도, 그 문화적 흔적과 의미를 보존하는 작업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관광호텔 간판과 오래된 간이온천, 그 주변 골목상권은 한 시절 대중 관광의 상징이자, 지역 근현대 생활문화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전통 온천지의 유산을 어떻게 기록하고 남길 것인지 역시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온천은 단지 ‘뜨거운 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여가문화와 지역 삶을 함께 품고 있던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유황 냄새가 바래고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지만, 다시 ‘치유’와 ‘자연’이라는 키워드로 회복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잊혀진 온천지들의 이름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단지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이한치한, 이열치열.. 계절과 관계없이 온천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