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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에 밀려난 명소: 공원과 시장이 사라진 동네 이야기

by 김제빵 2025. 4. 18.

 도시가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하는 사이, 우리 곁에서 사라진 장소들이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깃들었던 골목 시장, 아이들의 웃음이 넘쳤던 동네 공원, 철마다 다양한 풍경을 선물하던 시민의 쉼터들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버린 우리 동네의 명소들을 돌아보며, 그 상실의 의미와 지금의 도시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재개발에 밀려난 명소: 공원과 시장이 사라진 동네 이야기
재개발에 밀려난 명소: 공원과 시장이 사라진 동네 이야기

재개발의 그늘 속에서 사라진 풍경들

①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의 공간 소멸
 ‘재개발’은 낡은 도시를 새롭게 만들고,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의 풍경은 자주 급격히 바뀌며, 오랫동안 지역민과 함께했던 공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합니다. 특히 생활권 중심에 있던 재래시장이나 작은 근린공원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철거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심 고층 아파트 단지나 대형 복합상가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주민들이 정서적으로 연결되었던 장소는 소외되기 쉽습니다.

 

② 서울, 부산, 대구에서 사라진 '작은 명소들'
 서울 은평구의 한 시장은 4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오다 2020년대 초반 재개발로 철거되었습니다. 시장이 사라진 자리는 지금 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서며 완전히 새로운 동네로 바뀌었지만, 예전 상인들은 여전히 “우리는 그곳에서 인생을 살았다”고 회상합니다. 부산의 구포시장이나 대구 남산동 일대 공원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라졌으며, 오랫동안 주민들과 함께했던 상징적인 장소들이 조용히 잊히고 있습니다.

 

③ 기록되지 못한 공동체의 기억
 이러한 작은 명소들은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생활 유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문화재나 보존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기록조차 남지 않은 채 철거되고 맙니다. 이는 단지 물리적 장소의 상실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과 감정이 담긴 공간이 사라지는 일이며, 장기적으로는 지역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라진 공원, 사라진 쉼표

① 도시 속 숨구멍이었던 근린공원
 근린공원은 지역민이 일상적으로 찾는 소규모 휴식처였습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르신들의 산책길이었으며, 동네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공원들이 도심 개발의 사각지대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원이 위치한 땅의 가치는 높지만, 그 경제적 수익은 낮기 때문에 개발 압력을 받기 쉽습니다.

 

② ‘시민의 공원’에서 ‘개발 예정지’로
 서울의 북아현공원, 대구의 남부근린공원, 광주의 운천공원 등은 한때 시민들의 쉼터였지만, 현재는 대규모 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대부분 사라졌거나 축소되었습니다. 특히 서울 마포구의 한 공원은, 수십 년간 지역 어린이들의 놀이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주거단지 신설로 폐쇄되었고, 주민들의 반대 서명도 소용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는 커뮤니티 공간을 포함하고 있지만, 과연 예전처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공성’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③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의 성격
 공원이 단지 나무 몇 그루와 벤치로 구성된 공간이라면, 쉽게 다른 곳으로 대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누군가에게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아침마다 걷는 루틴이자 건강의 일부였습니다. 즉, 공원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주민 삶의 일부였으며, 그런 공간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예상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전통시장의 몰락과 상권의 이동

① 개발 논리에 밀려난 골목 상권
 전통시장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살아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상인들은 단골 손님의 이름을 기억했고, 아이들에겐 간식 하나쯤은 덤으로 주던 그런 공간. 하지만 오늘날 많은 재래시장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도시 정비 사업에서 ‘낙후된 상권’으로 분류되며,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것으로 대체되곤 합니다.

 

② 공간이 사라지며 무너지는 생계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전통시장은 2021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며, 100여 명의 상인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새로운 상업시설이 들어선다고는 하지만, 기존 상인들이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임대료 상승과 상권 재편으로 인해 기존의 ‘소상공 기반’은 붕괴되기 마련입니다. 이는 단순한 장소 이전이 아니라, 생계 기반을 잃는 일이며, 많은 중장년층 상인들이 은퇴 아닌 은퇴를 맞이하게 됩니다.

 

③ 상권보다 중요한 공동체적 가치
 전통시장의 진정한 가치는 상권보다는 ‘사람’에 있었습니다. 시장은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친구를 만나는 장소였고, 젊은 세대에게는 지역 문화를 체험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시장이 사라지면 단순히 상점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던 비경제적 교류, 즉 사람 사이의 연결도 함께 끊어집니다.

 

 

사라짐의 기록을 남기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

① 사라진 동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재개발은 물리적 공간만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간을 둘러싼 이름, 이야기, 기억까지 함께 밀어냅니다. ‘○○시장’, ‘△△공원’ 같은 지명은 주민들의 일상과 감정을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개발 이후 새롭게 조성된 공간에는 ‘○○스퀘어’, ‘센트럴파크’ 같은 이름이 붙지만, 그것이 지닌 정서적 의미는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그 이름을 잊지 않고 말과 글로 남기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유년과 노년이 묻혀 있는 이름은, 곧 삶의 단서이기도 하니까요.

 

② 재개발 구역 안에도 ‘기억 보존’의 공간을 남겨야.
 많은 도시 개발 사례에서, 기존의 장소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효율적인 설계와 상업성만을 기준으로 한 개발은 결국 지역의 정체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해, 과거의 흔적을 일부 남기는 개발 방식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시장 간판을 복원하거나 오래된 나무를 중심으로 광장을 조성하는 등의 방식입니다. 이런 소소한 장치들은 지역 주민에게는 추억의 복원이고, 외지인에게는 그 지역만의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됩니다.

 

③ 도시 기억의 지도 그리기
 서울에서는 일부 시민단체와 지역 아카이브 그룹들이 ‘재개발 이전의 도시’를 지도와 기록으로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성북구에서는 철거된 주택가와 오래된 시장, 골목의 이름들을 디지털 지도 위에 남기고, 주민들의 구술 기록을 함께 정리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공간을 직접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를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유의미한 시도입니다. 사라진 공간의 기억을 보존한다는 것은, 도시의 문화 자산을 지켜내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④ ‘살아 있는 재개발’을 위한 상상
 궁극적으로 재개발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과정이 무조건적인 철거와 제거가 아닌, 포용과 공존의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 도시의 미래는 훨씬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구조, 옛 공원의 벤치나 오래된 시장의 표지석이 새 단지 한켠에 남아 있는 풍경. 그것이야말로 기억과 개발이 손을 맞잡는 도시의 진짜 재생 아닐까요?

 

 도시 개발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더 나은 환경과 인프라, 주거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쉽게 사라지는 ‘일상 속 명소들’은, 단순한 풍경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시설을 누릴 수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라지는 공간들에 대해 더 많은 기록과 고민을 남겨야 합니다. 그곳은 단지 땅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던 자리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