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객실이 만실이었고, 피서철이면 가족과 연인으로 북적이던 해변 리조트들이 오늘날은 쓸쓸한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반짝이던 간판은 녹슬고, 유리창은 부서졌으며, 로비는 먼지와 습기로 가득한 침묵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해변가에 자리 잡았던 리조트들이 어떻게 관광의 상징에서 유휴 공간으로 전락했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시대적 흐름과 지역 경제의 부침, 그리고 이 폐호텔들이 남긴 흔적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성기에서 폐허로, 리조트의 시간
① 1980~90년대 해변 개발 붐
한국의 해변 관광은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속도로의 개통, 자동차 보급 확대, 여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맞물리면서, 삼면이 바다인 국토의 해안선에는 크고 작은 리조트와 펜션, 콘도들이 생겨났습니다. 강원도의 속초와 양양, 경북의 포항과 울진, 남해안의 여수와 통영 일대가 대표적인 개발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여 대규모 휴양지를 조성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② 인프라 확충과 지역 경제 성장
당시에는 해변 인근의 호텔이 하나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습니다. 리조트는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라 식당, 노래방, 수영장, 회의실 등 다양한 시설을 포함한 복합 공간으로 기능했고, 지역 상권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습니다. 피서철이면 주변의 시장과 식당, 기념품 가게까지 활기를 띠었고, 지역 축제와 연계된 여름 특수는 리조트를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③ 해안 리조트의 몰락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리조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경쟁이 과열됐고, 시설 노후화에 대한 대응은 미흡했습니다. 또한 저비용 항공의 확대와 해외여행의 일상화로 내국인의 관광 수요는 점차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많은 해변 리조트가 경영난에 빠졌고, 코로나19로 결정타를 맞은 뒤에는 폐업과 경매가 줄을 이었습니다.
남겨진 건물들, 무너진 휴양지의 오늘
① 폐호텔이 된 해변 리조트의 풍경
오늘날 일부 해변에서는 폐허가 된 호텔들이 오히려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문이 잠긴 입구, 깨진 유리창, 방치된 주차장, 그리고 바닷바람에 깎인 외벽은 이곳이 더 이상 ‘쉼’의 공간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강원 동해안이나 전남 해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폐호텔이 수년간 방치되며 지역 이미지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② 부동산 개발과 문화 재생 사이
일부 지역에서는 폐호텔을 철거하고 아파트나 신규 관광시설로 개발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해당 부지의 소유권 문제나 개발 이익의 불균형, 지역 주민과의 갈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 제주도의 한 리조트는 지역 청년들이 공동 창업하여 리모델링한 뒤, 독립 예술 공간과 커뮤니티 게스트하우스로 변모해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③ 관광지에서 유령지가 되기까지
폐호텔은 단지 하나의 실패한 사업체가 아니라, 관광이란 산업이 지닌 순환적 속성을 반영합니다. 특정 장소가 인기 있는 ‘핫플’로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잊히는 과정은 해변 리조트뿐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지속가능한 관광이란 무엇인지, 지역과 외부 자본의 협력은 어떻게 조율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계기가 됩니다.
폐허 속의 가능성, 공간이 다시 살아나는 법
① 방치된 건축물의 문화적 가치
모든 폐호텔이 곧바로 철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리조트는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표적 휴양 건물로서의 기록적 의미를 가집니다. 독특한 외관과 내부 구조는 촬영지, 전시 공간, 복합 문화공간 등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② 지역과 함께하는 재생의 방향
폐호텔 재생의 핵심은 지역 주민과의 협력입니다. 외부 자본만으로 단기적 개발에 그치지 않도록, 마을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 커뮤니티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경남 통영에서는 폐리조트를 시민 공동체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관광보다는 지역문화 기반을 우선한 접근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③ 기억으로 남기기, 그리고 기록하기
물리적 보존이 어려운 경우라도 폐호텔의 존재를 기록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사진,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전시 등을 통해 이 공간이 한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공유하는 작업은 훗날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 안의 기억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이야기가 됩니다.
위 글처럼 ‘폐호텔’은 단순히 철거와 방치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과 도시, 지역, 그리고 기억이 얽힌 복합적 상징입니다.
해변가의 낡은 리조트는 과거의 영광을 말해줄 뿐 아니라, 앞으로 관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묻는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