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땅’ 위에 존재합니다. 그 한복판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주변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버려진 마을들이 존재합니다.
이 마을들은 전쟁의 포성은 멈췄지만, 여전히 분단의 긴장 속에서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건물과 자연, 그리고 풍경은 전쟁과 평화의 경계에 서 있는 그곳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곳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DMZ 인근, 버려진 마을들의 형성 배경
전쟁과 함께 사라진 마을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과 남한을 잇던 수많은 국경 마을들이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였습니다. 특히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 연천, 철원, 파주, 강원도 고성, 인제 등지의 마을들은 직접적인 전투 피해를 입거나, 민간인 대피령에 따라 마을 전체가 비워져야 했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후 설정된 DMZ(비무장지대)는 남북으로 각각 약 2km씩 떨어진 완충 지대이며, 이곳은 군사 활동뿐 아니라 일반인의 접근도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폐허 속의 기억
당시 피난을 떠난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면서, 마을은 그대로 시간 속에 방치되었고, 군사 작전상의 이유로 복구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건물의 잔해와 붕괴된 벽돌 구조물은 수십 년간 자연에 잠식되며 폐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주민들의 흔적은 집기와 글자, 낡은 현판 등에 겨우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 유령 마을 분포
DMZ 근처의 대표적인 버려진 마을로는 경기도 연천의 고대리, 철원의 월정리, 파주의 적성면 일대, 그리고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 주변 마을 등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출입이 통제되거나 지정된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군의 협조나 사전 허가 없이는 출입 자체가 불가능한 곳도 많습니다.
고요한 분단의 풍경, 철원·연천의 폐마을들
철원의 월정리와 이북5도 사람들의 기억
철원은 전쟁 전까지 강원도의 중심 도시로, 번화했던 철원읍과 주변 마을들이 북으로 편입되면서 남한 측 철원은 폐허와 군사지역으로 변화했습니다. 대표적인 월정리 역과 이북5도 출신 피난민 정착지였던 철원평야 인근 마을들은 전쟁의 상흔과 함께 사라진 공동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2000년대 이후 DMZ 관광지로 개방되기 시작했고, 월정리역 폐역지와 철원 노동당사는 전쟁 전후의 분위기를 전하는 역사 유적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연천 고대리: 민간인 통제선 안의 유령 마을
연천군 고대리는 민통선 안에 위치한 대표적인 유령 마을 중 하나입니다. 한때 수백 명이 거주했던 마을은 정전 이후 군사적 목적으로 비워졌고, 지금은 폐허가 된 가옥들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연에 묻혀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고대산과 고대리 일대는 DMZ 생태탐방로가 조성되면서 일부 탐방객의 접근이 허용되었지만, 철조망과 감시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여전히 분단의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고요함 속의 생명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발길이 끊긴 이 지역들은 생태계 복원의 보고가 되었습니다. 멧돼지, 고라니, 두루미, 삵 등 멸종위기 동물들이 이 지역에 서식하며 DMZ를 ‘평화의 자연 유산’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폐허와 자연이 공존하는 이 독특한 풍경은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상징적 공간입니다.
접근 방법과 보존, 그리고 미래
일반인의 접근은 어떻게?
DMZ 및 민통선 지역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대부분의 버려진 마을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몇몇 지역은 지자체 주관의 탐방 프로그램, 문화해설사 동반 투어, 또는 생태 평화누리길 등의 공식 루트를 통해 제한적으로 탐방할 수 있습니다.
• 철원 평화전망대 & DMZ 투어: 월정리 폐역, 노동당사, 백마고지 등 포함
• 연천 고대산 생태탐방로: 사전 예약제로 운영
• 파주 임진각·도라산 일대: 제3땅굴 및 DMZ전시관 관람 가능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전쟁과 분단의 역사, 생태 복원의 현재를 함께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존과 개발의 딜레마
DMZ 인근 유령 마을들은 역사적 가치와 생태적 가치 모두를 지니고 있지만, 군사 안보와의 충돌, 토지 소유권 문제, 지역 개발 논의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유적 보존과 문화 공간으로의 전환을 주장하지만, 여전히 민감한 위치에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미래를 위한 기억의 공간
비무장지대와 그 주변의 버려진 마을들은 단지 과거의 잔재가 아닌, 전쟁과 평화의 공존,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이야기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이들을 보존하고 알리는 일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