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관광버스가 대형 주차장을 가득 메우며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골 장터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SNS에서조차 잘 언급되지 않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조용히 남아 있는 장터들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때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던 ‘유명 시골 장터’가 지금은 지역 주민들의 일상 속 장터로 조용히 변화해온 모습을 세 곳의 이야기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곡성 기차마을과 섬진강 장터: 증기기관차와 함께 사라진 붐
한때 전국구 관광지였던 곡성
전라남도 곡성의 ‘기차마을’은 2000년대 초반, 증기기관차 체험 열차와 함께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여행지였습니다.
기차역 주변에는 각종 향토 음식점과 특산물 장터가 형성되었고, 특히 섬진강 장터는 ‘곡성 여행의 필수 코스’로 꼽히며 관광버스가 끊이지 않던 장소였죠. 장날이면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손수레에 담긴 나물부터 메기탕, 모시송편까지 남도 특유의 다채로운 먹거리가 넘쳐났습니다.
관광객 중심에서 지역민 중심으로
하지만 증기기관차 운영이 잦아들고 관광 흐름이 분산되면서, 장터를 찾는 발길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의 섬진강 장터는 관광객보다는 곡성 지역 주민들의 생활 시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여전히 매주 4일과 9일에 열리며, 시골 할머니들이 직접 키운 채소와 닭, 각종 밑반찬을 사고파는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진솔합니다.
정선 5일장: 관광의 아이콘에서 지역 상권의 보루로
‘정선 아리랑시장’의 전성기
정선 5일장은 오랫동안 강원도 대표 장터이자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5일장이었습니다.
정선 아리랑 열차의 개통 이후,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 장터는 명실상부한 관광 명소가 되었죠. 올챙이국수, 곤드레밥, 황기오리백숙 등 지역 향토 음식이 즐비했고, 정선의 특산물인 산나물과 약초, 수공예품도 인기였습니다.
장터 한복판에는 버스 단체 관광객 전용 구역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고, 시장 방송에는 서울말보다 사투리가 낯선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가 반복되곤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꺾인 흐름, 그리고 회복의 조짐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단체 관광의 급감과 소비 패턴 변화로 인해, 정선 5일장도 이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형 버스 대신 소규모 가족 단위 방문이 늘었고, 장터도 점차 관광 중심에서 생활 소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선군은 최근 전통 장터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청년 상인 유치와 지역상품 브랜딩 등으로 회복을 꾀하고 있습니다.
고창 읍내장: 풍천장어보다 더 강했던 장날의 기억
‘풍천장어’보다 유명했던 고창 읍내장
전라북도 고창은 지금도 풍천장어로 유명하지만, 과거엔 읍내 5일장이 훨씬 더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던 장소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고창 시외버스터미널과 연계된 당일 코스 상품에는 고인돌 유적지와 읍내장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가 반드시 포함됐고,
장날이면 골목골목마다 상인들의 목소리와 천막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관광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이제는 고창 주민만 아는 조용한 장터
하지만 교통 인프라가 KTX 중심으로 재편되고, 개별 여행 문화가 확산되면서 읍내장을 찾는 외지인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지금의 고창 장터는 진짜 지역민들이 찾는 생활형 장터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어르신들의 이용률이 높으며,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 방식의 두부 만들기, 장아찌 담그기 등은 관광 상품이 아닌 ‘일상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죠.
이번 주말, 추억 속에 남아있는 이 곳들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