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가족 여행지로, 신혼여행지로, 바다를 품은 추억의 장소로 사랑받았던 연안의 섬들. 서울보다 가깝고, 해외보다 이국적이었던 이 섬들은 ‘연안 여객선’이라는 연결선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속도로의 개통, 항공 노선의 확대, 소비 패턴의 변화 등으로 인해 연안 여객선 항로는 점점 사라지고, 그 항로에 의지해 살던 섬마을 역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해외보다 가까웠던 섬들’이라는 기억을 따라, 잊혀진 연안 여객선 항로와 그 너머에 남겨진 섬들의 현재를 다루고자 합니다.
한때는 인기 관광지였던 연안의 섬들
① 1980~90년대, ‘섬 여행’은 새로운 모험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연안의 섬들은 도시인들에게 ‘가까운 비일상’을 선물하는 여행지였다.
당시엔 인천 연안부두, 목포항, 여수항 등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향하는 일이 하나의 여행 코스였다.
장봉도, 연평도, 덕적도, 흑산도, 청산도, 비진도 등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곳이었다.
특히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북적였고, 지역축제와 함께 섬 주민들도 생기를 얻었다.
② 바다와 시간을 건너던 ‘여객선’의 문화
단순히 섬으로 가기 위한 수단을 넘어, 여객선 그 자체도 하나의 문화 공간이었다.
갑판에서 먹는 컵라면, 갈매기에게 던져주는 새우깡, 바닷바람 맞으며 듣던 라디오 소리.
이 모든 요소가 낭만적인 여행의 기억을 만들었다.
그 당시에 여객선 항로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도시에서 자연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섬 여행’의 핵심이었다.
③ 섬 주민의 삶을 지탱하던 필수 교통망
여객선은 여행자뿐 아니라 섬 주민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유일한 연결망이기도 했다.
학교 통학, 병원 진료, 생필품 운송, 농수산물 판매까지 여객선 없이 불가능했던 일이 없었다.
연안 항로는 물류와 인간의 감정이 오고 가는 생명의 선이었다.
사라진 항로, 그리고 잊혀진 섬들
① 교통의 변화가 가져온 항로 단절
2000년대 들어 고속도로망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섬과 육지를 잇는 연륙교가 속속 건설되면서
연안 여객선 항로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거제도, 강화도, 마라도처럼 예전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섬들이
이제는 자동차로도 갈 수 있게 되면서, 여객선은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었다.
게다가 저비용 항공사(LCC)의 활성화로 해외여행이 더 쉬워지자, 사람들은 점점 섬 대신 외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② 항로가 끊긴 뒤의 섬, 그리고 남겨진 풍경
여객선이 더 이상 정박하지 않는 섬들은 빠르게 조용해졌다.
민박집은 문을 닫고, 식당은 철거되거나 방치됐다.
예전에는 연일 관광객이 끊이지 않던 선착장이 이제는 녹슨 철제 구조물만을 남기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일부 섬 주민들은 육지로 이주하거나, 섬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③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는 ‘섬의 시대’
사라진 항로는 단순한 교통 변화 이상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가까운 바다 여행’이라는 문화 자체의 소멸이며, 지방 섬마을 공동체의 해체와도 맞닿아 있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했던 흑산도 여름 여행, 졸업 여행으로 갔던 청산도의 바닷길은 이제는 개인의 기억 속에만 머물게 되었다.
연안의 섬들, 다시 조명할 수 있을까?
① 지역별로 부활 시도 중인 연안 여객선
몇몇 지역에서는 과거의 연안 항로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전남 완도군은 청산도와 소안도, 신지도를 연결하는 해양 관광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인천시 역시 연안부두에서 시작되는 ‘섬 투어’ 프로그램을 재정비하고 있다.
섬을 하나의 ‘체험형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여객선 노선을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여행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향이 그 핵심이다.
② 느림과 자연을 즐기는 ‘로컬 여행’의 매력
최근 들어 과속보다 느림을, 번화한 도시보다 고요한 자연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연안 섬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바다 위를 천천히 건너며 마을에 스며드는 방식의 여행은 섬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는 단기 관광을 넘어,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③ ‘옛 항로 따라 걷기’가 줄 수 있는 경험
연안 여객선 항로의 흔적을 따라 섬을 여행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그 길을 걷는다는 건 과거의 문화, 지역의 삶, 그리고 우리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행위다.
사라져가는 섬과 사람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 풍경을 기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연안 항로’ 자체가 살아 있는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연안따라 멋진 섬들이 여전히 많다. 우리의 기억을 다시 마주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여행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